[거제 와현 장애인해수욕장 가보니]
백사장에 놓인 휠체어 경사로
보조 인력이 도와주는 물놀이
수상휠체어 타고 파도 속으로
"온몸으로 바다 느껴 너무 좋아"
시 조성· 주민호응에도 "감사"

"휠체어가 가는 길은 모두에게 편합니다."
지난달 31일 거제시 일운면 와현모래숲해변은 여름 휴가철을 맞아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곳에서 만난 안순자(66) 경남지체장애인협회 거제시지회장이 해변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젊은 엄마가 아이 손을 잡고 계단 대신 '장애인 해수욕장'에 설치된 경사로를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거제에는 16개 해수욕장이 있다. 6월 29일 일제히 개장해 8월 18일까지 운영한다. 와현모래숲해변에 올해 장애인 해수욕장이 생겼다. 거제시는 지난달 31일 현재까지 장애인 이용객 수는 95명으로 집계했다. 한 달여 동안 하루 평균 3~4명이 이용한 셈이다. 이날 거제지역 장애인단체들이 현장을 점검하고 개선 사항을 찾고자 모였다.
안 지회장은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다. 그는 기자에게 자신의 휠체어를 내어주며 직접 경험해 보라고 했다. 휠체어를 타고 백사장으로 향했다. 경사로부터 난관이었다. 완만해 보였던 경사로는 혼자 휠체어 바퀴를 밀고 가기에 버거운 경사도였다. 해변까지 가려면 한참 돌아가야 했다. 매끄럽지 못한 경계석에서 엎어질 뻔했고, 바퀴 방향 잡는 것도 힘들었다. 금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삐질삐질 땀이 났다. 한낮의 열기 때문도, 휠체어가 익숙지 않아서만도 아니었다.
"타보니 어떠냐?"
안 지회장에게 굳이 휠체어를 경험시킨 이유를 알았다고 답했다.
안 지회장은 "바다가 짠지 단지 모르고 살았어요. 누군가 힘이 돼주지 않으면 어디든 못 가는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습니다. 휠체어가 가는 길은 노인, 유아차, 두 다리 건강한 청년에게도 편안해요. 비장애인이 다름을 인정한다면 같이 즐길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준환(55) 경남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 거제지회장은 중도 장애인이다. 거제 토박이인 그는 바다를 잘 안다. 하지만 실명 후에는 바다를 찾을 일이 없었다. 그는 안내인 도움으로 해변을 걸었다. 안내인이 떠밀려온 해초라든가 모래사장 모양·색깔 등을 설명했다. 바다 더 가까이 다가가려다 갑자기 밀려온 파도에 신발이 젖었다. 얼른 한 발짝 물러선 그는 젖어도 괜찮은 신발이라며 웃었다. 그는 "만날 소음만 듣다가 파도 소리를 들으니 속이 시원하게 뚫리는 느낌입니다. 바닷바람도 끈적이지 않고 상쾌해요"라며 즐거워했다.

변장수(58) 거제시장애인단체총연합회 사무국장은 이날 난생처음 바다에 들어갔다. 낚시를 좋아하지만 바다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백사장에 깔린 매트를 지나 바닷가에서 수상 휠체어로 갈아탔다. 보조 인력의 도움이 필요했다.
"낚시하면서 손으로 만졌을 때 바다와 온몸으로 느끼는 바닷물 느낌이 확연히 다르네요. 경험하지 못한 부분을 경험했다는 것에서 굉장히 기분이 좋습니다. 더 많은 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는 해수욕장을 만드는 데 마중물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변 사무국장은 장애인 해수욕장을 만들 때 자문 역할을 했다. 그는 행정이 정책을 결정할 때 당사자가 참여해 시행착오를 줄여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수욕장은 장애인에게 특히 접근성이 떨어집니다"라며 "바다에 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데, 보편적으로 같이 누릴 수 있는 이런 공간을 지자체가 의무적으로 만들어가는 고민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했다.
현장 모니터 중점 내용은 크게 세 가지였다. 외부 접근성, 이용 편리성, 안전성이다.
변 사무국장은 "'장애인 해수욕장'이라기보다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해수욕장' 수준이지만, 거제시가 처음 시도한 점에서 고맙습니다"라며 "문제점을 지적하기보다 개선점을 제안하려고 모니터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족이든 도우미든 누군가가 계속 보살펴줘야 한다면 아무도 즐기지 못해요. 조금 더 세심하게 보완한다면 충분히 같이 즐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고 덧붙였다.
변 사무국장은 특히 장애인 해수욕장 개장에 호응해준 지역민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이런 정책을 시작한 것도 긍정적이지만, 그 준비 과정에서 당사자와 주민들이 함께 참여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합니다"라고 밝혔다.
이문학(50) 와현마을 이장이 이날 현장에서 장애인단체 의견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이 이장은 "주민 간 약간 마찰이 있었지만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라면서 "우리는 모두 잠재적 장애인입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똑같이 대우해야 합니다. 아직은 한계가 있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기간제 보조 요원으로 활동하는 김혜빈(29) 씨는 "장애인 해수욕장이 생겼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오는 장애인도 막상 도움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해서 바다만 바라보고 돌아가는 일이 있어 마음이 아팠어요"라면서 "더 편하게 이용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미경(60) 거제시장애인단체총연합회장은 장애인 접근성을 높이고 참여를 늘릴 수 있도록 체험 캠프 등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일회성 사업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무장애 도시'를 만드는 데 행정과 계속 협조하고 공유해 나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앞서 경남도는 지난 4월 장애인이 부담없이 여가생활을 즐기고 문화 창작활동을 누릴 수 있는 복지정책으로 '경남 장애인 세상든든'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대표적인 사업으로 여행을 지원하는 '장애인 세상보기(휠체어리프트) 버스'를 운행하고 있으며, 첫 번째 여행지가 거제시였다. 도는 전국 처음으로 2022년 12월 소노캄거제·한화리조트 거제 벨버디어·금호통영마리나리조트와 장애인 이용료 할인 업무협약도 했다.
보건복지부가 3년마다 시행하는 장애인 실태조사를 보면, 2023년 생활만족도는 3.3점(5점 기준), 여가생활 만족도는 3.1점으로 나타났다. 여가생활 만족도는 2017년(3.0점), 2020년(2.9점)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2020년 기준 주요 문화·여가활동은 TV 시청이 89.4%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여행(5.4%), 스포츠(3.1%) 순으로 집계됐다.
/정봉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