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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양의무자 족쇄 때문에 평생 시설에 갇혀 ㅏㄹ아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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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0-11-15 15:39 조회9,0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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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양의무자 족쇄 때문에 평생 시설에 갇혀 살아야 하나요?

김현수씨,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수급권 박탈 위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빨리 됐으면 좋겠습니다" 2010.11.11 18:00 입력 | 2010.11.12 00: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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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에서 나와 자유롭게 사는 게 꿈이라고 말하는 김현수씨
부모가 아홉 살 때 강제로 시설에 보냈다. 부모고 형제고 일 년에 얼굴 한번 볼까 하면서 26년을 보내왔다. 노동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은 당연히 기초수급권자가 됐다. 그런데 이제 시설에서 나가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은 이 중증장애인 앞에 놓인 것은 ‘수급권 박탈'이다. 부모, 형제라는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최근 부양의무자 족쇄로 수급권자가 되지 못하는 빈곤 사각 층을 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수급권의 소득인정액 요건을 실질적으로 갖추고 있음에도 기초수급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규모는 103만여 명(2008년 기준)으로 전체 인구 중 2.13%로 추산되고 있으며, 비수급 빈곤가구 중 54.5%가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하고 있다.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아래 기초법)의 문제 때문에 시설에서 나오면 수급권이 박탈될 처지에 놓인 김현수(35, 지체장애 1급) 씨를 지난 4일 국가인권위에서 만났다. 이날은 인권단체 등이 현병철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인권위 점거농성을 시작한 첫 날이었다. 김 씨도 이날 인권단체의 농성에 함께하기 위해 인권위를 찾았다.

“가족들이 시설에서 못 나오게 하는 이유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김씨는 현재 김포에 있는 석암베데스다요양원(현 향유의 집, 아래 석암요양원)이라는 장애인 시설에 살고 있다. 석암요양원은 지난 2009년 시설비리 척결과 탈시설·자립생활을 위해 여덟 명의 중증장애인이 이곳에서 나와 노숙농성을 했던 곳이다. 그때 시설에서 나온 동료들은 70여 일 동안의 노숙농성을 통해 결국 서울시로부터 ‘장애인자립생활가정’ 제도화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나오려던 김 씨는 나오지 못했다. 가족의 반대 때문이었다.

 

“부모고 형제고 시설로 와서 ‘나오지 말라’고 했어요. 세상이 장애인 위주의 세상이 아니니 나오면 굶어죽을 거라고 하면서 만류했죠.”

 

김씨가 이때 시설에서 나오지 못한 건 꼭 부모님 말을 전적으로 수긍해서는 아니었다. 장애인 위주의 세상이 아닌 건 진작 아는 바였고, 당시 비위생적인 음식을 줄 만큼 비리온상이었던 시설에서 살아봐서 굶어 죽는 게 무서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당장 나와서 몸을 맡길 곳이 필요했다. 부모가 받아주지 못하겠다는 데 무턱대고 나오기로 결심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김 씨는 훗날을 도모하며 일단 시설에 머물렀다.

 

김 씨는 선천적 장애는 아니지만 어떻게 장애인이 됐는지는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비장애인으로 태어났으나 황달을 제때 치료하지 못해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됐다는 얘기만 부모님에게 들었을 뿐이다.

 

시설에 들어간 건 83년도였다. 부모가 강제로 김 씨를 아동시설인 삼육재활원으로 보냈다. 당시 대부분 가정이 그렇듯 ‘가난’이 이유였다. 나이가 차서 더는 아동시설에 있을 수 없게 되자 91년도에 석암요양원으로 왔다. 기초수급권자(당시 영세민)는 삼육재활원에 들어갔을 때 됐다.

 

당시 석암요양원은 가족끼리 족벌체제로 운영하면서 기초수급비 등을 착복하는 등 문제가 많았다. 김 씨는 장애수당 12만 원 외에는 기초수급비 전체를 석암요양원이 관리해서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2009년 5월 자신의 동거인으로 석암요양원 이사장이 올라 있는 걸 알게 되고 본격적으로 시설비리투쟁이 시작되면서 김씨도 석암비상대책위원회 일원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결국 시설에서는 나오지 못한 채 생활하다가 지난해 9월 임대주택을 신청했는데 당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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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암비대위에서 함께 활동했던 김진수씨와 얘기를 나누는 김현수씨

 

김 씨는 이번에야말로 시설에서 나올 수 있구나 하는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김 씨의 부모는 다시 그에게 나오지 말 것을 종용했다.

 

“지금 나오면 부모님 재산이 있기 때문에 수급권이 탈락한다고 나오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겉으로는 2년만 참으면 강화도에 땅을 살만큼 돈이 모이니 그 돈으로 땅 사고 집 사서 부모님이랑 함께 살자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동생 결혼도 앞두고 있으니 나올 때가 아니라고요. 하지만 그건 그저 입에 발린 소리라고 생각해요. 진짜 재산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지만, 재산이 있다 해도 저랑 같이 살길 원하시진 않을 거에요. 부모님을 제가 잘 아는데 그동안 번번이 거짓말로 절 못 나오게 하셨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꼭 나가고 싶어요. 그리고 25년 넘게 따로 살았는데 이제와 부모님과 같이 살 마음도 없고요.”

 

부모님이 나오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뭘까? “신경쓰고 싶지 않다는 거죠. 시설에 있으면 시설에서 관리하니까 부모님이 저에 대해 신경쓰지 않아도 되거든요.”

 

그러나 문제는 시설에서 나오면 수급권자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리기 때문이다.

 

“보장시설 수급자에게 일반 수급자로 전환될 때까지 두 달이 걸리는데 그 두 달 동안은 아무런 혜택도 받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시설에서 나가기 전에 미리 조사 신청을 해놓은 상태에요.”

 

그러나 시설에서는 수급권자였는데 지역사회 나와 수급권이 박탈되면 김 씨가 살 길은 막막해진다. 장애수당 12만 원으로는 먹고 살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가고 싶어요. 시설에서는 외출도 허락받고 나와야 해요. 부모에게 용돈 드릴 나이에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요. 모든 일정이 정해져 있고요. 하루를 살더라도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일단 일자리를 구하려고요. 물론 비장애인도 취직하기 어려운 세상이라지만 장애인단체에서 일하고 싶어요. 낮에는 돈을 벌고 밤에는 공부하고… 하고 싶은 걸 하겠어요.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일일지라도 나에게는 사소하지 않아요”

 

인터뷰 끝 무렵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수급권이 박탈되는 현실에 대해서 김 씨는 목소리를 높였다.

 

“참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요. 복지부는 장애인 시설에서 나오라고 말로는 그러면서 그동안 연락도 없었던 부양의무자가 있으니 수급권을 박탈하겠다고 하는 건 겉 다르고 속 다른 행동이죠. 장애인에게 굶어 죽으라는 얘기입니다. 가난 때문에 가족이 시설에 버려 수급자가 됐는데 이제와 가족이 어떻게 다시 부양할 수 있겠어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빨리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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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복지부가 시설에서 나오라고 한 후 부양의무자 족쇄로 수급권을 박탈하는 것은 장애인에게 굶어죽으라는 얘기다"라고 비판했다.

 

국회예산정책처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하면 6만 명 구제할 수 있어”

 

현행 기초법에서 ‘부양의무자’는 수급권자를 부양할 책임이 있는 자로서 수급권자의 1촌의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를 말하며 부모(장인, 장모 포함) 아들, 딸, 며느리, 사위가 대상이다.

 

현재 수급자로 선정되려면 소득인정액 기준과 부양의무자 기준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부양의무자 기준을 충족하려면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는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거나 미약해야 한다.

 

비수급 빈곤층이 되는 원인 중 하나는 부양의무자가 실제로 부양비를 지급하지 않는데도 부양의무자의 실제소득 일부를 부양비로 피부양자에게 지급한 것으로 간주하는 ‘간주부양비’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소득이 없는데 소득인정액이 수급 기준을 초과해 수급자 선정에서 탈락하는 사례가 많고 기초보장 수급을 하는 경우에도 간주부양비와 실제부양비의 격차가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간주부양비 및 부양의무자 기준의 폐지와 대안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사회단체 등은 기초법 10년을 맞아 법 개정을 요구하고 나선 데 이어 민주노동당 곽정숙, 민주당 최영희·이낙연,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 등이 부양의무자 폐지나 완화를 골자로 하는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한 상태다.

 

지난 8일 국가예산정책처(아래 예산처)도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해 2011년 예산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예산처는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한시적 대책으로는 부족하다”라며 “부양의무자의 소득기준을 완화할 것”을 주문했다.

 

현행 부양의무자 소득기준을 보면, 부양의무자가 수급자와 부양의무자 각각의 최저생계비를 합한 금액의 1.3배 이상을 벌면 부모의 수급 자격이 제한된다. 예컨대 4인 가구의 가장한테 홀어머니가 있는데, 자식의 월 소득이 두 가구 최저생계비의 130%(243만원)를 넘으면 홀어머니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다.

 

예산처는 “소득기준 130%(243만 원)는 2009년 전국 가구 평균소득(344만 원)의 70% 수준에 불과해 실제로는 (자녀가 경제적으로 생활하기 힘들어) 부양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라고 진단하고 “소득기준을 최저생계비의 150%로 완화하면, 6만 명이 보호를 받을 수 있고 예산은 1,938억 원이 더 들어갈 것으로 추정된다”라며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현진 기자 luddite420@bemin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