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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장애이론과 다른 장애이론의 논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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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0-12-20 16:22 조회6,6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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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장애이론과 다른 장애이론의 논쟁들

페미니스트들과 사회학자들, 사회적 장애이론 비판
장애인 억압 철폐를 위한 실천과 연결고리 가져야 '장애학' 2010.11.25 18:30 입력 | 2010.12.20 12:57 수정

지난 장애학 네 번째 연재 때 우리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장애인을 배제했는지 핀켈스타인(Finkelstein)의 3단계설을 가지고 설명했다. 즉, 산업혁명 이전의 봉건사회는 인간이 노동과정의 주체가 되어 장애인을 배제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노동의 초점이 가정에서 공장으로 이동하는 산업화 과정에서는 결과적 생산성에만 집중하다 보니 장애인은 배제됐다고 본 것이다.

 

이렇게 장애인이 배제된 과정을 생산양식의 변화로 보는 견해와 달리, 사고양식의 변화로 보는 관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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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트는 과학적 접근이 장애인의 삶을 변화시키리라고 봤지만, 이는 지나친 낙관주의라는 비판을 받았다.

 

콩트는 자신의 저서인 『실증철학강의』(1830~1842)에서 인간의 정신과 사고양식은 신학적(종교적), 형이상학적(추상적), 실증적(과학적)이라는 세 가지 단계를 거쳐 발전해 왔다고 말한다.

즉, 약물중독, 동성애, 정신질환과 같은 일탈이 처음에는 종교적, 윤리적 문제로 다루어지다가 이후에는 법적인 문제로 다루어졌고, 지금은 의료적 문제로 취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장애인에게 적용시켜보면 처음에는 장애인을 종교적이고 박애주의적인 ‘동정심의 철학’에 기반을 두고 접근했다가, 이후 장애인과 사회 양자 모두에 대한 ‘보호의 철학’으로 관점이 바뀌고, 지금은 과학적·교육학적 접근이 발전하면서 앞으로 장애인의 삶의 조건이 실질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본다.

앞서 핀켈스타인의 견해와 마찬가지로 사고양식의 진화론적 모형도 그 한계에 대해 비판을 받는다. 먼저 한 현상에 상호배제적인 명확한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도 장애는 부모나 본인의 죗값이라는 견해, 한정치산·금치산과 같은 사법적 판단의 문제, 그리고 의학적 차원의 문제가 함께 존재한다. 또한 과학적 접근이 장애인 삶의 질을 개선할 것이라는 인식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자, 그렇다면 지금까지 기존의 개인적이고 의료적인 접근을 비판하며, 장애인운동을 전제로 한 사회적 장애모형은 다른 이론으로부터 어떤 비판을 받고 있을까?

 

기존의 장애 정의가 손상과 장애를 하나의 연쇄관계 내지는 인과관계로 바라본다면, 사회적 장애모형의 장애정의는 손상과 장애를 분리해 각기 서로 다른 차원의 것으로 본다는 이야기는 여러 차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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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일 지방선거 때 광진구의 한 투표소. 지하에 엘리베이터도 없는 곳에 투표소가 설치돼 장애인이 짐짝처럼 들려 투표소로 들어가야 했다. 이는 사회가 손상을 장애로 만드는 지점이라고 사회적 모형론자들은 지적한다.

그런데 이런 손상과 장애의 분리는 사회적 장애모형의 핵심적인 지점이면서 가장 첨예한 논쟁의 지점이다.

우선 세계보건기구의 국제장애분류(ICIDH) 창시자들은 사회적 장애모형을 무시하는 편이나, 그 중 한 명인 의료사회학자 베리는 적극적으로 손상과 장애의 분리를 비판한다. 베리는 다양한 만성질환들이 가져오는 활동제한을 얘기하면서 손상과 장애 간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한마디로 ‘과잉사회화’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사회적 모형론자들의 주장은 일종의 수사학이고, 이것이 장애 대중들에게 강한 결집력을 부여하기는 하지만, 실제적 문제들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기를 회피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에 입각한 장애이론가 모리스도 사회적 장애모형을 비판한다. 모리스는 사회적 장애모형이 손상을 사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으로 격하해 온 것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사회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의 가부장적 분할이 장애학 내에 반영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손상과 장애의 분할 및 손상영역의 배제 때문에, 장애여성들에게서 몸에 대한 자신의 경험, 특히 손상과 관련된 경험을 표출할 수 있는 여지를 박탈한다고 비판한다.

또 다른 이론가 크로의 말을 빌리자면, 고통·피로·우울·불확실성과 같은 경험들이 사회적 모형 내에서는 적절히 반영돼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크로가 보기에는 이런 경험들이 장애인을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다른 집단들과 구분짓는 중요한 하나의 측면임에도 말이다.

즉, 여성이나 흑인과 같은 다른 소수자 집단을 다른 사람들과 구분짓는 특징은 ‘중립적 사실들’ 뿐이지만, 장애인은 자신의 몸에 대한 경험을 의미하는 손상은 그 자체로 불쾌하거나 힘든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서 한발 더 나아가 프라이스와 실드릭같은 페미니즘 저술가들은 사회적인 것으로서의 장애와 생물학적이고 육체적인 것으로서의 손상 간의 구별 자체가 근대적인 이원론적 사고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장애가 사회적인 구성물인 것처럼, 손상이라는 것 역시 생물학적인 실재성과 연계성을 갖지 않는 하나의 사회적 구성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몸 자체를 권력의 소재지로 파악하고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 ‘몸의 사회학’ 학자들도 사회적 장애모형의 한계를 지적한다. 장애인에게 근대사회가 보인 몸에 대한 관심은 억압적인 사회질서의 형성과 동전의 양면이었지만, 그렇다고 몸과 손상을 자연의 영역에 할당하는 것은 장애와 다른 형태의 억압에 대한 구별을 곤란하게 해 이론적 정합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들에 대해 마이클 올리버는 손상이 사회학의 한 연구분야로서 유의미하게 형성될 수 있음은 인정했지만, 여전히 손상이 장애학 본연의 주제는 아니라는 견해를 고수했다.

이는 장애학이 제시하는 이론적 설명이 단지 이론적 정합성만이 아니라, 장애인 대중의 삶과 장애인운동에 대해 실천적 대안과 함의를 지녀야 한다는 정치적 입장에 근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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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2일 의정부 안병용 시장이 저상버스 타기 체험을 해보는 모습. 사회적 장애이론가들은 장애학이 장애대중의 삶을 바꾸는 것과 연결돼야 한다고 본다.

 

즉, 손상의 의제화를 주장하는 이들의 문제의식은 일정한 타당성을 가진다 하더라도 장애인의 억압을 철폐하기 위한 현실의 실천과 연결고리를 갖지 못한다면, 이는 장애이론이지 장애학은 아니라는 것이다.

페미니스트이지만 사회적 모형론자인 토머스는 ‘손상효과’라는 용어를 통해 활동을 제한할 수 있는 손상을 인정하지만, 사회적 장애모형에서 말하는 장애란 이러한 종류의 활동제한이 아님을 지적한다.

 

장애란 ‘손상을 지니고 있는 사람을 사회활동의 주류적 참여로부터 배제하는 당대의 사회조직에 의한 활동의 제한’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활동제한이 손상의 탓으로 귀결되는 것은 그 자체로 장애차별주의의 결과라고 반박한다.

또한 의료사회학 내의 여러 논의가 흥미있고 가치를 지닌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립생활, 빈곤, 고용, 교육, 의사소통, 교통, 접근 가능한 건축환경, 시민권 등의 이슈를 다루는 일에 착수할 수 없으므로 그것은 장애학이 될 수 없다고 토머스는 주장했다.

다음회에는 사회적 장애모형 안에서 벌어지는 논쟁의 다른 부분을 좀 더 살펴볼 예정이다.



박현진 기자 luddite420@bemin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