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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인권’의 잣대로 권리옹호에 나서야” (비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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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6-27 15:42 조회6,4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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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인권’의 잣대로 권리옹호에 나서야”
서울지역 활동가들 대상으로 ‘장애인권 워크숍’ 열려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 등 다양한 인권침해 사례 공유해
2012.06.24 02:49 입력 | 2012.06.25 22:4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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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장애인권 고개넘기 워크숍-인권 줄다리기'가 지난 22일 늦은 2시에 열렸다.


“시각장애인이 사업설명회를 하는 언어장애인에게 “당신은 웬만하면 이야기하지 마. 말 잘하는 사람이 이야기해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시각장애인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소리만 들을 수 있으니 언어장애인이 설명하면 잘 못 알아듣는 게 당연할 겁니다. 장애차별이나 인권침해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관공서에서 공무원이 언어장애인에게 “당신 말 못 알아듣겠으니 이야기하지 마시오” 하면 당연히 인권침해이고 장애차별입니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이 언어장애인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것은 쌍방과실인가요? 이것이 딜레마입니다.”

 

진행자 : 사업 설명하는 사람은 많이 당황했을 것이고, 시각장애인은 안 들리니 많이 답답했겠죠. 양측 모두 불편한 상황입니다. 언어장애인이 시각장애인을 차별한 건가요? 의사소통을 귀로만 의존할 수 있는 상황에서 시각장애인이 언어장애인에게 “넌 이야기하지 마”라고 이야기한 것은 차별일까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참여자 : 사업설명회를 준비할 때 언어장애인,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등 어떤 사람이 오는지 파악해 예측할 수 있다면 통역사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언어장애인이 말을 하면 언어장애가 없는 사람이 그대로 통역해주는 방법을 준비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소통의 방법을 미리 준비했다면 차별의 자리보다 오히려 교육의 자리가 될 수 있었을 겁니다.

 

지난 22일 늦은 2시,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장애인권 고개넘기 워크숍-인권 줄다리기'가 열렸다. 이날 1부 『민주주의에 反(반)하다』 저자 하승우 씨의 강연에 이어 2부에서는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박옥순 활동가의 진행으로 ‘권리옹호 활동의 모든 것’이라는 주제의 워크숍이 진행됐다.

 

박 활동가는 “내가 권리침해를 당했을 때, 어떠한 권리옹호 활동을 펼쳤는지, 혹은 어떻게 하고 싶은지에 대한 진행과정을 풀어보자"라면서 "권리옹호 과정에서 인권센터나 변호사 등과 같은 자원을 비롯해 어떤 자원들을 내가 활용했는지 찾고, 그에 따른 결과는 어떠했으며 그 문제의 딜레마는 무엇이었는지 나눠보자”라고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워크숍 참가자들은 총 여섯 모둠으로 나뉘어 각 모둠에서 자신이 겪은 인권침해 사례들을 나누고 그 중 하나의 사례를 택해 전체 참가자들 앞에서 발표했다, 활동가들은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인권에 대한 감수성과 고민을 확장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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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정 활동가가 저상버스를 타려고 했으나 승차 거부당한 자신의 경험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워크숍에서는 저상버스에 대한 사례가 두 건이 나왔다. 그 중 한 사례를 소개한다.

 

“저상버스를 타려는데 활동보조인 없이 혼자 타려고 하니 버스 기사가 “집에나 있지 왜 돌아다니느냐”라며 승차거부를 한 채 쌩 지나갔습니다. 버스 번호를 기억하고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보냈는데 그 후, 같은 버스 기사를 또 만났습니다. 기사에게 '인권위에 지난번 일로 내가 진정했다'라고 하니 기사가 하지 말라며 또 승차거부 했습니다. 후에 인권위에 접수됐다고 통보받았는데 1년이 지나도록 이 문제에 대한 답이 없습니다. 인권위에 진정하는 건 처음이라 과정을 모르고 있어서 어떤 조치가 내려지는지 의문이 듭니다.”

 

저상버스에 대해 참여자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경험이 쏟아져 나왔다.

 

이 사건에 대해 한 활동가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사람인 두 개의 사건이 일어난 건데, ‘인권위에 진정하지 마라’며 승차 거부한 두 번째 사건은 첫 번째 사건보다 더 심각하다”라며 “두 번째 사건은 또 다른 별도의 사건으로 인권위에 진정할 수 있다고 본다”라고 지적했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라나 사무국장은 “차에 타자마자 출발해서 위험했던 경험이 있는데 120 다산콜센터에 민원을 넣으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민원 넣으니, 그날 바로 교통과에서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냐고 연락이 왔다”라면서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버스회사에 경고해달라 답했고, 후에 어떻게 처리했는지 통보도 받았다”라며 자신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 외에 “서울시의 장애인인권교육을 함께 요구해야 한다”, “1인 시위, 항의전화로 끈질기게 권리옹호를 해야 한다” 등 참가자들의 다양한 답변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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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워크숍에 참여한 장애여성공감 배복주 대표의 모습


장애여성공감 배복주 대표는 자신의 상담소에서 맡은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며 발달장애인의 권리옹호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눴다.

 

“인터넷 동호회에 가입된 비장애인 남성이 다수의 지적장애인 여성을 유인해 사기 치고 성관계를 맺었어요. 중요한 건 이 사건의 딜레마가, 피해자 지적장애인들은 가해자의 행위를 범죄라고 인식 못 하고 가해자와의 관계를 지속하길 원하며,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있어요. 그러나 이것은 지적장애인 특성을 악의적으로 이용한 범죄입니다. 가해자 때문에 지적장애인은 신용불량자가 됐지만, 신용불량자라는 의미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죠. 그런데 여기서 지적장애인을 우리가 설득하고 교육해서 ‘이건 범죄니 너의 결정은 틀렸다’라고 말하는 게 맞나요, 아니면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여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는 게 맞나요?”

 

배 대표의 사례 소개에 강의실에는 잠시 깊은 한숨과 침묵이 감돌았다. 이에 대해 박 활동가는 “권리옹호의 핵심은 발달장애인이든 누구든 내 몸과 내 정신을 내가 온전히 운행할 힘을 갖는 것”이라면서 “발달장애인이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고 자기 선택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멀고 길더라도 권리옹호의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박 활동가는 “지금 현재 닥친 상황에서는 활동가로서 ‘보편적 인권’의 잣대를 가지고 접근하는데, 마찬가지로 이런 사례들에 대해서도 인권이라는 기본 원칙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라며 물음을 던졌다.

 

이 외에도 밤 10시 이후 영화관에서 엘리베이터 운행을 멈춰 휠체어가 내려올 수 없었던 사례, 장애인복지관에 근무하는 시각장애인이 시각장애인용 프로그램이 없어 정당한 편의와 정보 접근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례 등이 발표됐다.

 

한편, 앞서 1부에서 진행된 하승우 씨의 강연에서 하 씨는 “자립이란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는 방법이나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자립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가 바탕이 돼야 한다”라며 “옛날에는 오늘날보다 관계의 밀도가 높았고 그러한 것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라고 전했다.

 

하 씨는 이날 강의에서 3·1운동, 소안도의 역사, 1960년 4·19 혁명, 80년 광주 항쟁 등 다양한 역사 속 사람들의 모습을 소개하며 그 안에 있었던 다양한 협동조합의 모습을 밝혀냈다.

 

하 씨는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바뀐 이후에 쭉 밀고 나가는 뒷심이 필요한데, 그 뒷심을 만들 수 있는 관계로 협동조합이 있다”라면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가 아닌 우리의 욕구에 반(反)하는 민주주의에서 살아왔는데, 협동조합이 이 사회를 재구성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라며 지역 내 관계로 이뤄지는 새로운 형태의 협동조합을 제시했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주최로 열린 이날 인권워크숍은 총 네 시간 동안 삼십여 명 활동가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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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서는 『민주주의에 反(반)하다』 저자 하승우 씨의 강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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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이 워크숍 2부에서 자신의 인권침해 경험을 함께 나누며 토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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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둠에서 결정된 내용을 전지에 쓰고 있는 한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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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발표를 하고 있는 성동장애인자립생할센터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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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워크숍에 참여한 활동가들의 토론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