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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와 외로움을 시로 표현하죠" (비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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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1-08-30 11:23 조회6,3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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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와 외로움을 시로 표현하죠"
장애인활동가 신승우 씨, '나를 두고 왔다' 발간
"정정수 열사 이야기 극으로 만드는 것이 꿈"
2011.08.29 13:00 입력 | 2011.08.29 14: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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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우 시집 '나를 두고 왔다'

경기도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경기장차연) 신승우 활동가가 첫 시집 '나를 두고 왔다'를 출간했다.

 

2004년 '솟대문학' 추천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신 씨는 문예지 '시평'에 시를 발표한 것을 계기로 맹문재 시인으로부터 시집 출간을 제의받아 푸른사상에서 첫 시집을 발간하게 됐다.

 

신 씨는 군대 제대 후, 1998년 교통사고를 당해 뇌병변장애 2급, 시각장애 3급 장애를 입었다. 그는 이즈음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장안대학에서 응용미술을 전공한 신 씨는 사고 후 디자인과 사진을 작업을 지속할 수 없게 됐고, 이후 시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글을 쓰던 선배가 사고를 당해 집에서만 있는 저를 보고는 용인문학회 지역모임에 데리고 갔어요. 이후 지속적으로 글을 쓰게 됐고 솟대문학 추천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게 됐죠. 사고를 당한 후 글쓰기에 변화가 있었다면 말장난보다는 진지하게 삶의 여러 가지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에요. 장애인 삶의 조건들이 생존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가벼운 것들이 걸러지고 진중하게 내면을 건드리는 것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되었죠."


맹문재 시인으로부터 "한하운의 시 세계 이후 가장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신승우의 시편들은 우리에게 삶의 진정성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라는 평을 받은 바 있는 신 씨는 자신의 시가 '소외'와 '외로움'을 기반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제 시는 소외와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외롭고 소외되어 있기 때문에 시를 쓰는 것이죠. 장애인 투쟁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남들 다 인간답게 사는데 외로워서 하는 것으로 생각하거든요 우리도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는데 외롭잖아요. 남들은 버스를 타고, 택시 타는데 탈 수 없다는 것이…. 아직 제 시는 옹알이 수준이라고 생각해요. 현명한 사람들은 깨닫고 나서 표현을 하지만, 저는 그렇지 못하기에 몸으로 부딪혀가면서 알게 되는 것들을 표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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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 '나를 두고 왔다'를 출간한 신승우 시인.

 

경기지역의 이동권, 활동보조 문제 해결을 위해 헌신하다가 먼저 세상을 떠난 정정수 열사를 만나면서 장애인운동의 첫발을 내디뎟다는 신 씨. 그는 시 작업 이외에도 경기도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부대표, 수원새움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사단법인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경기지부장을 지냈고, 현재 경기장차연과 경기도 장애인극단 '난다' 대표로 활동하며 장애인운동과 장애인 문화운동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신 씨는 경기장차연이 지난 7월 12일부터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며 수원역 광장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어 종종 천막을 지키면서도 첫 시집 발간과 '난다' 공연 준비로 항시 투쟁현장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한다. 신 씨는 복지예산 확보를 위한 투쟁과 함께 장애인 문화운동 역시 장애해방에 이바지한다고 믿기에 앞으로 장애인과 관련한 문화 활동도 활발히 벌여나갈 생각이다.

 

 "정정수 열사의 이야기를 극으로 만드는 게 꿈이에요. 정수형이 잘생겨서 제가 정수 형 역을 맡기는 어렵겠지만, 어떤 식으로 극을 만드는데 참여하고 싶어요. 국가에서 복지예산을 늘렸는데 장애인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잖아요. 장애인운동과 마찬가지로 장애인 문화운동 또한 장애해방에 이르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집 엿보기]

 

나를 두고 왔다 

 

바람 부는 언덕에 동생을 두고 왔다.

곁에 아무도 없어, 혼자일 텐데. 무섭고 외로울 텐데.

원인 모를 두통이 그치질 않는다. 머리 한 편이 바람에 얼얼했다

 

흙손을 붙잡아 닦아주면, 하얗게 빛나며 나타나던 손바닥은 내 손에서 떨어진 적 없었다. 빠진 이 창피한 줄 모르고, 활짝 보이며 웃던 소리가 귀에서 내려간 적 없었다. 그 입으로, 하루종일 혀 짧은 소리로 지저귀던.

 

동생은 내가 책 읽는 걸 좋아했다.

공부를 하면 나중엔 사탕을 주며, 종일 놀아줄 줄 알았나보다.

책을 펼치기만 하면 놀아달라 보채지도 않고, 물끄러미 지키다 잠이 들곤 했다.

책을 읽고 언덕을 내려와 한 일을 생각해보면,

승진도 결혼도, 뭣도 아닌, 바람 부는 언덕에 동생을 두고 온 것이다.

나도 사람이었다. 언덕 쪽으로는 고개가 돌아가지 않았다.

독한 심장이 짐승의 목을 잡아채었다.

 

나는 안다. 허기진 몸에 부는 바람은 살갗을 뚫는다는 것을.

나는 또 안다. 언덕에 동생을 두고 와, 이제는 두툼한 옷이 배부른 몸을 감싸고 있지만,

죽어서도 그 언덕 바람은, 그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죽은 사람 얼굴에 침을 뱉고 오셨네요

 

 

어이구, 세상 좋아졌지. 휠체어 탄 장애인들이 길을 막아서

한참을 돌아왔어. 나쁜 새끼들, 집에나 처박혀 있지. 에구, 에프티에이다 뭐다,

이젠 장애인들까지 나와, 개나 소나 다 데모만 하다 나라 망하지.

 

아버지가 세상으로 가는 통로를 막았나 보네요.

작년에 이 도시에서 지적 장애인 아이가 현관문을 못 열어 동생과 타 죽었어요.

부모는 먹고살려고 하루 종일 나가 있었죠. 그때 활동보조제도가 시행되고 있다면 지금 살아서 뛰어놀 아이인데.

아이 눈망울을 묻은 부모의 가슴을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려고,

나라에서 에프티에이 비준, 비정규직 법안에 도장을 찍어 대고 있어요.

그런 날에 아버지는 무엇을 하셨나요.

길을 막은 시위대를 욕하고 오셨나요. 제도가, 사회가 살인하는 것을 막으려는 사람과 함께하지 않으셨죠.

아버지는 침을 뱉은 거예요.

죽어간 사람들, 죽어갈 사람들 얼굴에 침을 뱉은 거예요.

 

 

 

그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달빛

 

알다시피 언어학자는 아니야. 웅변가나 작가도 아니지만,

지금껏 말하면서 사람들과 잘 지냈다구.

그런데, 그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그러니까 산이 깊어지는 것을 보았다가,

바람이 무겁게 느껴져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산 그림자 낮은 목소리에 잠긴 거야.

다시 말할게.

어디에 있건, 얼마나 시끄러운 태양을 만났던지 간에, 반드시 어두워지는 법이잖아.

그런데 대낮을 결산하기도 전에, 참으로 둥그런 빛 속에 갇힌 거야.

그렇지, 둥그런 빛, 그건 눈부시게 밝지도 뚜렷하지도 않지만, 일렁이는 부드러운 숨결을

느낄 수 있지. 어린 나비 날개만이, 푹 젖어 낮게 날아다닌다구.

아니야, 정확히 동그란 원이 아니야, 그런 이야기들의 시간이 아닌,

어느새 너의 단추가 풀어져 있는 시간.

 

그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김가영 기자 chara@bemin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