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연합뉴스) 김지선 기자 = "내년에는 꼭 미국을 횡단해서 저와 같은 병을 앓는 친구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어요."
온몸의 근육이 점점 약해지는 희귀 난치병인 '근이영양증'을 앓는 배재국(15.대전중 1년)군은 9일 전동휠체어를 타고 제주도 한 바퀴를 도는 희망의 국토행진을 시작하기에 앞서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배군과 아버지 종훈(44)씨는 이날 오전 성산일출봉을 출발해 김녕해수욕장까지 약 30㎞를 걷는 등 오는 17일까지 8박9일간 제주도 해안도로를 따라 280㎞를 행진할 예정이다.
배군은 2007년 부산∼서울 종단에 성공한 데 이어 2009년 전남 해남군 땅끝마을∼임진각 평화누리, 지난해 대전 옥계초등학교∼포항 호미곶까지 일주한 바 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아들 곁에서 걸으며 섬 이름을 하나씩 설명해주던 종훈씨는 똑같은 티셔츠를 사이좋게 맞춰 입고 씩씩하게 가던 아들 배군이 갑자기 통증을 호소하자 팔다리를 주무르며 위축된 근육을 풀어줬다.
비바람을 맞으며 하루 평균 8시간씩 도로를 달리는 일정은 건강한 성인도 쉽지 않지만, 다리를 못 움직이고 팔에 강한 힘을 주기 어려운 배군은 이내 '괜찮다'며 씩 웃어 보였다.
이들 부자는 이번 제주 일주를 위해 지난 4월에 이미 답사를 마쳤고, 집 근처 산책 코스에서 하루에 20∼25㎞씩 호흡을 맞췄다. 덕분에 한 시간에 5㎞쯤은 문제없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배군은 "바람은 좀 많이 불지만, 제주도에 오니 좋다"며 "환우들에게 근육병 치료약·치료방법이 생길 그날까지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넓은 세상을 보길 원하는 재국이는 몸이 더 굳어지기 전에 제주도에 꼭 와보고 싶어 했다'고 전한 종훈씨는 "해안도로다 보니 좁은 길이나 계단이 많지만, 전동휠체어로 가지 못하면 수동휠체어에 옮겨 태워서, 수동휠체어도 갈 수 없다면 업어서라도 아들이 가고 싶어하는 길이라면 어디든 함께 가겠다"며 잠시 목이 메었다.
북촌 돌하르방공원이 숙박을 제공하고, ㈜제주생태관광과 서귀포장애인종합복지관 관계자들은 길동무가 되는 등 배군 부자와 뜻을 함께하는 많은 이들이 제주도 일주에 힘을 보탰다.
'김영갑 갤러리'의 초청을 받은 배군은 제주 풍광을 사진으로 담다가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난 사진작가 고(故) 김영갑(1957∼2005년)의 작품들과도 곧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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