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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팔 잃은 것이 운명이라면 그림 그리는 것은 숙명"(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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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1-07-29 16:18 조회7,7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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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팔 잃은 것이 운명이라면 그림 그리는 것은 숙명"
장애를 극복한 의수화가 석창우 화백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1-07-29 09: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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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금곡동 1021번지에서는 '에이블아트센터' 개관식이 열렸다.

'장애의 예술'이란 뜻을 담고 있는 '에이블아트'센터는 회화실과 도예실, 영상실 등 장애인들이 예술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국내 1호 의수(義手) 화가인 석창우 화백(56)은 이날 '서예 크로키'를 시연한 뒤, 작품에는 성경 구절을 낙관글로 적어 넣었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마태복음 7장 8절)'  

■ 두 팔은 없지만 뭔가 열심히 하는 아빠!  

그로부터 약 열흘 뒤인 지난 25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있는 석창우 화백의 자택을 다시 찾았다.

그는 거실에서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막식'에 쓰일 작품을 그리고 있었다.

원반던지기와 창던지기를 하는 선수의 순간적인 몸동작을 화선지에 서예 크로키로 담아내고 있었다.

거실 한쪽에는 가야금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바닥에는 구약성경 사사기를 붓으로 필사한 종이도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석 화백에게 먼저 에이블아트센터 개관식 때 왜 마태복음 7장 8절을 시연작품의 낙관글로 정했는지 물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큰 위안이 될 수 있는 성경 말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기도 하고요. 역경에 처했다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적극적으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자꾸 과거의 좋았던 시절에만 파묻혀서는 안됩니다. 지금 자기가 처한 현실적인 조건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매진하면 누구나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지난 1984년 중소기업의 전기관리자로 근무하던 그는 불의의 감전사고로 양팔과 발가락 2개를 잃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9살이었고, 아들이 태어난 지 겨우 50일 만에 당한 사고였다.

그 후 1년 반 동안 생사를 넘나들며 줄곧 병원 신세를 졌다. 수술만 12차례나 받았다.

그림은 1988년 초 '독수리를 그려 달라'고 졸랐던 아들 때문에 우연히 시작했다.

"양팔이 없어서 아무것도 안 하는 아빠가 되기보다는 팔은 없지만, 뭔가를 열심히 하는 아빠가 되고 싶었어요. 의수에다 붓을 끼워 간신히 그림을 그릴 수는 있었죠. 재미도 있었죠. 하지만, 불편한 몸으로 붓을 놀리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늘 코피가 터지고 몸살이 나기 일쑤였습니다. 가족들도 '겨우 살려놨더니 그림 그리다 또 죽을 일이 있느냐?'면서 심하게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성경 말씀대로 제가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할 길은 화가라는 확신이 점차 들더군요."

■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하는 삶  

석창우 화백은 2개의 아호(雅號)가 있다.

하나는 그의 서예 스승인 여태명 선생(현 원광대 미대 교수)이 지어준 '금곡(金曲)'이다.

이 호는 금란지교(金蘭之交; 금처럼 견고하고 난초처럼 향기로운 사귐)에서 '금' 자를 그리고 곡굉지락(曲肱之樂; 베개마저 없어서 팔을 구부려 베고 잘 정도이지만, 청빈에 만족하며 도를 닦는 즐거움)에서 '곡' 자를 각각 따와 지은 것이다.

그의 또 다른 호는 자신이 지은 성엣장(流氷)이다.

빙산이 파도와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흘러다닌다는 뜻이다.

"내 의지보다는 하나님의 부름에 따라 저한테 주어진 삶을 살고 싶어요. 빙산은 '이리로 가야겠다. 혹은 저리로 가야겠다.' 하는 의지나 고집이 없어요. 그저 바람과 파도에 자기를 맡길 뿐이죠. 그러면서도 결국에는 물과 동화가 돼 하나가 되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즐겁게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머지는 편안하게 하나님의 뜻에 맡기면 되죠. 그분이 어떤 놀라운 계획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제가 양팔을 잃고 화가가 된 것도 그분의 미리 짜 논 프로그램이 아닐까요?"  

삶을 대하는 이런 소박한 자세 때문인지 그에게는 거창한 목표 같은 것은 없다.

세상을 향해 구태여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그저 힘닿는 만큼 묵묵히 그림을 그릴 뿐이다. 그 때가 가장 행복하기 때문이다.

"살면서 '이렇게 저렇게 해야지!'하고 목표나 계획을 많이 세우지만, 사실 뜻대로 되는 일은 많지 않아요. 오히려 자기 생각을 고집하다 일단 실패를 겪으면 남 탓을 하며 원망이나 실의에 빠지기에 십상이죠. 그리고 끝까지 미련이 남아 계속 자기 생각을 고집하다 오히려 악수에 악수를 거듭하는 예도 많이 봤습니다. 저는 될 수 있는 대로 제 생각을 비우려고 해요.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일 즐겁게 열심히 하다가 하늘나라로 간 사람으로 기억되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 "석 화백 때문에 다시 힘낼게요!"  

석창우 화백은 서양식 크로키와 동양화의 먹을 결합하여 서예 크로키라는 독창적인 화풍을 확립한 작가다.

자랑스러운 한국장애인상 위원회는 지난 15일 올해 문화예술 부문 수상자로 석 화백을 선정했다.

그는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막식'에 쓰일 작품을 완성한 뒤, 다음 달 26일부터 서울 강남 창작화랑에서 2주간 초대전을 가질 예정이다.

또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기간에는 대구로 내려가 외국관광객을 대상으로 시연회를 할 예정이다. 그가 이렇게 바쁜 일정을 소화해낼 수 있는 것은 부인의 헌신적인 내조의 덕이 크다.

"제 아내는 사고 당시에도 대수롭지 않은 듯 아주 덤덤하게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제가 그림을 시작하자 집안 경제는 자신이 책임질 테니 나는 그림에만 몰두하라고 하더군요. 그 이후에 지금껏 아내는 늘 저에게 사랑을 주기만 했어요. 세수와 양치질부터 음식을 먹이고 옷을 입히는 것까지 아내가 하나하나 챙기는 일은 끝이 없죠.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석 화백은 최근 부인과 함께 가야금을 배우고 있다. 의수에다 고무밴드를 끼워 12개의 가야금 줄을 튕겨 소리를 낸다.

그는 "일반 아리랑과 강원도 아리랑은 웬만큼 소리를 낼 수 있는데 진도 아리랑은 너무 어렵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가끔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고 했다. 삶이 너무 힘겨워 자포자기했다가 자신의 이야기에 감동해 '다시 한 번 열심히 살아보겠노라"고 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란다.

이에 대한 그의 위로는 간단하다.

"아주 잘 생각하셨습니다!"

절대자 앞에서 겸손과 복종을 의미하는 '성엣장'이라는 그의 아호는 그의 삶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

okwater7@nocutnews.co.kr/에이블뉴스제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