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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스테드 판결 당사자, 오바마를 만나다 (비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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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1-06-30 13:18 조회4,0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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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스테드 판결 당사자, 오바마를 만나다
옴스테드 판결 12주년 맞아 소송당사자와 대통령 만나
탈시설 자립생활운동 전환점이 된 판결의 의미 되새겨
2011.06.28 02:10 입력 | 2011.06.28 23:52 수정

1995년 미국 조지아 주립 정신병원에 수용돼 있던 두 장애여성이 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루이스 커티스(Lois Curtis, 정신분열증)와 일레인 윌슨(Elanie Wilson, 인격장애), 두 장애여성은 주치의가 지역사회 기반 프로그램을 통한 치료가 적절하다고 진단했음에도 시설 측이 지역사회로 나가는 것을 거부하자, 자신들이 격리된 환경에서 감금되어 있는 것이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주 정부는 이들을 시설에 계속 수용하도록 한 것은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이 아니라 부족한 재정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4년이 흐른 1999년 6월 22일 미국 연방 대법원은 정당화되지 않은 시설 격리는 미국장애인법(ADA) 아래서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결하며 두 장애여성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른바 '옴스테드 판결'이라고 부르는 이 판결은 시설 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미국 탈시설 자립생활운동에 새로운 전환점을 준 역사적인 판결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20일, '옴스테드 판결' 12주년을 맞아 소송당사자 중의 한 명이었던 루이스 커티스 씨가 미국 백악관을 방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 자신의 그림을 선물했다. 당시 이들의 변호를 맡았던 수 제임슨(Sue Jamieson) 변호사는 22일 백악관 블로그를 통해 '옴스테드 판결'과 소송 당사자였던 루이스 커티스 씨의 이야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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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스테드 판결 12주년을 맞아 소송 당사자였던 루이스 커티스 씨가 백악관을 방문,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자신이 그린 그림을 선물하고 있다. ©The White House Blog

 

옴스테드 챔피언 대통령을 만나다

 

수 제임슨(변호사) / 번역 : 이리나(한국장애인재활협회 사무국 과장)

 

 

루이스 커티스에게 열세 살 때부터 수용시설에서 살았던 기억들은 늘 함께 할 것입니다. 애틀랜타 법률지원협회에 있는 내 사무실로 용감하게 전화를 하던 그녀가 첫 통화에서 “나는 이곳에서 나가고 싶어요!”라고 말했을 때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삶을 비록 지금 살고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그날부터의 여정(그리고 투쟁)은 역사적인 대법원 판결, 그녀 자신의 집, 그녀가 예술가로서 성공적으로 쌓아온 경력들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지금 옴스테드 판결 12주년 기념일에 우리가 보듯이 대통령 집무실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가진 만남까지.


옴스테드 이야기는 대법원의 판결이 있기 오래전부터 시작합니다. 루이스와 또 다른 원고였던 일레인 윌슨(2004년 작고)은 조지아 주립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1995년에 지역사회에서 장애 서비스를 받기를 원한다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다섯 해 동안 이 소송을 맡아 일하다가 (판결이 내려지는) 운명적인 날에 워싱턴 D.C로 온 우리는 장애인의 시민적 권리를 위해 전날 대부분 밤을 새우며 피켓을 들고 있었던 수백 명, 그 중 많은 이들은 휠체어를 타고 있었던, 사람들을 가르며 연방 대법원의 계단을 오르면서 아마도 루이스보다 더 감동했던 것 같습니다. 변호사들은 하급 병원의 성공적인 판결을 대법원이 뒤집을 수 있다는 두려운 가능성과 그렇지는 않을 거라는 즐거운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루이스는 그 일을 수월하게 해내는 것 같았고 그 순간의 즐거움을 잘 아는 듯 했습니다. 그녀는 주립병원에 있지 않고 친구들과 지지자들과 함께 워싱턴 D.C로 온 여행을 즐기고 있었기에 그날의 자유와 모험 자체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날 그녀는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있지 않을까 물으면서 백악관 구경을 갈 것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내 장애인계의 강렬한 헌신과 더불어 루이스와 일레인은 진실로 우리를 고무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알다시피, 연방 대법원은 결국 정당하지 않은 장애인에 대한 시설 고립에 대해 미국 장애인법 아래서 비합법적인 차별행위임을 공표했고, 이에 따라 미국 내 수백만 명의 장애인들이 큰 행보를 내디딜 수 있게 되었습니다.


루이스의 이야기는 대법원의 획기적인 판결 이후 끝나지 않습니다. 사실, 그 결정은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시설에서 나와 직원들이 있는 주거 홈에서 산 루이스는, 지금은 조지아 주의 스톤 마운틴 지역의 아름다운 집을 빌려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동료예술가이자 친구를 룸메이트로 선택했습니다. 2010년에는 그녀가 지속적으로 독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고자 비영리 소위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친구들로 구성된 소위원회는 개인에 대한 지원과 서비스를 돕기 위해 수립된 것입니다. 그녀의 사례에서 보자면, 소위원회는 그녀가 자신이 직접 구성한 발달장애인 서비스 비용 지원 프로그램에 접근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습니다.

 

예술가로서의 루이스의 경력도 시작되었습니다. 2004년 연방 노동부로부터 받은 맞춤형 고용 초기 지원은 그녀에 대한 옹호자들을 이끌어냈고 이후 몇 차례에 걸친 여성 개인전을 열게 했으며 제약 없는 자유로운 예술적 표현으로 예술계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최근 그녀의 그림은 1,400달러(150만 원)에 경매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루이스는 그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제가 예술 작업의 의미를 그녀에게 물었을 때 그녀는 “나의 예술은 오랫동안 주변에 있었어요. 난 그저 예술이 내게 올 때 함께 갑니다. 예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이 세상이 그런 것처럼 신을 만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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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커티스의 '오렌지 색 드레스를 입은 소녀' © www.loiscurtisart.com


루이스는 사회에 통합해 살아가려는 선택한 사람들을 돕고 안내하는 일을 다시 수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녀는 부모들과 가족 구성원들에게 제대로 된 지원과 서비스만 있다면, 지역사회에서의 삶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매우 보람된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는 옴스테드 판결의 완전한 이행을 강력하게 지원함으로써 이것이 가능하도록 돕고 있으며,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의 취업과 여가 생활, 사회생활에서의 완전한 통합을 보장하기 위해 돕고 있습니다.

 

루이스가 대법원을 방문한 지 12년이 지난 2011년 6월 20일, 루이스는 단지 대통령을 본 게 아니라 대통령의 집무실에서 고위 인사의 방문 형식으로 그녀의 원본 그림을 선물로 증정했습니다. ‘오렌지 색 드레스를 입은 소녀’는 루이스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여줄 사진이 없기에 창조한 세 가지 파스텔 자화상 시리즈 중 하나였습니다.



Sue Jamieson / 번역 이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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