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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이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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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1-02-07 17:44 조회6,2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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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이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죠"

탈시설 자립생활 시작한 윤국진, 박현 씨 인터뷰
"수급비 다 빼앗아가는 시설에선 수급자, 나오면 부양의무제에 걸려" 2011.01.28 18:00 입력 | 2011.01.28 23:01 수정

‘탈시설 자립생활’은 이미 대세다. 그러나 말만 ‘대세’일 뿐 시설에서 살다가 지역사회에서 중증장애인이 독립해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4시간 시설 종사자가 중증장애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지만, 시설에서는 심리적으로 누군가 항상 함께한다는 울타리가 있다. 반면 그 울타리 밖으로 나가면 돌봐주는 사람 없이 모든 것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선뜻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가족의 반대도 큰 장벽이다. 가족들은 시설에서 나오면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며 번번이 중증장애인들의 독립 의지를 주저앉힌다.

 

이 두 사람은 시설에서 나왔다. 그리고 독립생활을 시작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주거복지사업으로 음성 꽃동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시작한 윤국진(36세, 뇌병변장애 1급). 박현(29세, 뇌병변장애 1급) 씨를 이들의 새 보금자리인 서울 광진구의 한 빌라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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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시설인 음성꽃동네에서부터 친하게 지내 지금은 시설에서 나와 함께 자립생활을 하는 윤국진 씨(좌)와 박현 씨(우)

 

남이 정해준 시간에 맞춰 살기가 싫었어요

 

25일 많이 내린 눈을 헤치고 광진구의 빌라에 도착했을 때 윤국진, 박현 씨는 마침 식사 중이었다. “많이 춥죠?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라며 두 사람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들은 이미 장애인계에서 언론을 통해 알려진 인물이다. 2009년 12월 16일 그들이 살던 음성꽃동네에서 사회복지변경서비스 신청을 냈고 음성군이 이를 거부하자 2010년 4월 6일 소송을 낸 바 있다. 그러나 소송은 패소했다.  ‘김포 향유의 집’(옛 석암재단 베데스다요양원, 양천구청 관할)에서 생활하던 황인현(지체장애 1급) 씨가 서울 양천구청장을 상대로 낸 사회복지서비스변경신청거부처분취소 소송에서 28일 원고 승소 판결을 받은 것과 대조적이다.

 

당시 두 사람의 소송을 담당했던 재판부는 선고문에서 “원고들이 서울이나 대도시에서 독립, 공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서울 내 시설을 알아보고 알선해달라고 음성군수에게 사회복지서비스 변경을 청구하는 것은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다만 “법의 취지나 세계적 추세로 볼 때 시설 수용보다는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가나 지자체가 지원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며 장애인의 자립생활에 대한 국가와 지자체의 지원을 언급했다.

 

그러나 국가나 지자체는 나서지 않았다. 서울시 체험홈은 서울시민만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민간단체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주거복지사업에서 이들에게 2년간 주거지원을 결정해 이들의 자립생활은 가능했다.

 

윤국진 씨와 박현 씨는 각각 15살과 13살에 음성꽃동네에 들어갔다. 그전까지는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갇힌 듯이 살았다. 초등학교 의무교육은 이들에게 해당 사항이 없었다. 아무 교육도 받지 못했다. 부모님은 맞벌이로 바빴다. 형제들마저 학교에 가고 나면 텔레비전을 보는 게 유일한 일이었다. 점심은 동네 아주머니가 챙겨주면 먹고 아니면 굶었다.

 

그러다가 윤 씨는 부모의 이혼으로, 박 씨는 동네 아는 사람의 추천으로 시설로 가게 됐다. 박 씨는 시설이라는 데가 복지관처럼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나오는 곳인 줄 알았단다. 그렇게 가게 된 시설에서 며칠 동안 밤마다 울어야 했다. 가족들은 입소 초기에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왔지만 점점 찾아오는 걸음이 뜸해졌다. 시설에서 가족들의 방문을 꺼린 것도 이유였다.

 

똑같은 나날의 연속으로 그렇게 시설생활이 흘러갔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정해진 시간에 잠을 잤다. 그러다가 2003년 시설 원장으로 온 수녀님의 권유로 현재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의 전신인 한국뇌성마비장애인연합회에 가입하게 된다. 그 단체에서 하는 자립생활 강의를 듣다 보니 ‘내가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나보다 조건이 좋지 않은 사람들도 비장애인들과 똑같이 지역사회에 나가 사는 모습을 보니 보기가 좋았어요. 나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윤국진)

 

“저는 강의를 듣기 전부터 나가고 싶었어요. 매일 남이 정해주는 일과표대로 살기 싫었어요.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었죠.” (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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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4월 6일 소송을 내기 전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모습.

 

연락이 끊긴 가족 때문에 왜 고통받아야 하나요?

 

탈시설운동을 하는 단체인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과 꾸준히 연락하며 자립생활을 준비하던 중 윤국진 씨는 그동안 연락이 완전히 끊어졌던 가족과 연락이 닿았다. 그러나 2009년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을 만나 사회복지서비스 변경신청 소송을 시작하자 가족들은 소송 자체와 시설에서 나가는 것을 반대하며 연락을 끊어버렸다. ‘돌봐줄 사람도 없는데 무턱대고 나오기만 되냐, 밤에 일 생기면 어쩌려고 하느냐’라는 것이 가족들의 우려 섞인 반대 이유였다. 박현 씨 또한 가족의 반대가 심했다.

 

이들은 ‘비장애인도 독립해서 살려면 우리와 다를 바가 없다. 우리라고 못할 게 뭐 있느냐. 우린 활동보조가 있으니 괜찮다’라며 부모를 설득했고 결국 주거복지사업의 도움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윤 씨의 어머니는 현재 연락을 끊은 상태이고 아버지만 연락된다. 박 씨는 어머니와 동생이 집에 찾아와 반찬도 갖다주지만, 지금도 “시설에 다시 들어가면 안되겠냐”라고 묻는다.

 

그래도 이들은 내 맘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처음 살아보는 이 생활이 신나고 재미있다. “나와서 처음 한 일은 동사무소 가서 전입신고한 거였어요. 그 다음 날은 은행 가서 통장 만들고 주택청약에 가입했죠. 지역사회에서 내가 이렇게 사는구나 하는 생각에 기뻤어요. 마트 가서 필요한 생필품도 사고, 얼마 전에는 활동보조인과 함께 영화관에 가서 영화도 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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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국진 씨가 사회복지서비스 이용안내문을 받아들고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주거복지사업을 담당하는 활동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인터뷰 도중 우편물이 도착했다. 사회복지서비스안내문이다. 활동보조서비스가 100시간 제공된다는 내용이다. 그 옆에 자부담 5만 원이 적혀있다. 두 사람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이들은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로 당연히 자부담이 면제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 두 사람은 부양의무자 조건 등의 조사가 남아 있어 수급권이 정지된 상태다. 

 

주거복지사업을 담당하는 미소 활동가는 부양의무자 조건에 걸려 두 사람의 수급권이 박탈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두 사람 중 한 명의 부모가 재산이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 형제와 연락이 끊겨 얼굴도 못 보고 사는데 부모가 재산이 있다고 수급권이 박탈된다니, 억울하기만 하다.

 

“정말 법이 말도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럼 애초부터 수급권자가 되지 말아야 하는 건데, 시설에 들어가 있을 때는 수급권을 주고 왜 지역사회에 나오면 뺏는지 모르겠어요. 시설에 있을 때는 수급비를 다 시설에서 가져가서 모아둔 돈도 없는데 이렇게 수급권을 박탈하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사나요?”

 

박현 씨는 한 달에 100시간 받는 활동보조서비스가 더 맘에 걸린다고 한다. “현재 주거복지사업의 지원으로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8시간 활동보조를 받는데, 갑자기 하루 3시간으로 활동보조가 줄어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현재 두 사람은 주거복지사업의 긴급지원으로 각자에게 지원한 50만 원이 가진 돈의 전부다. 서울시 체험홈과 달리 주거복지사업은 주거비 이외에 공과금 등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사정은 더욱 열악하다.

 

이들이 수급권자가 되기 위해서는 가족 간의 단절을 증명해야 한다. 장애인 본인의 진술서 외에 가족구성원이 증명서를 써야 한다. 문제는 연락조차 안 되는 가족이 증명서를 써줄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그 서류조차 가족이 써보내지 않는 것 자체가 가족단절을 의미하는 것인데도, 구청에서는 증명서를 가족이 보내오지 않는다면 가족단절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윤국진 씨 표현대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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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사온 축하케이크 앞에서 환하게 웃는 두 사람

 

공부도 계속하고 소송도 다시 시작할 계획

 

어두워진 이들의 얼굴을 밝게 해준 사람은 마침 이들의 자립생활을 축하하러 온 지인의 방문이었다. 잠시 고민을 내려놓고 케이크 촛불을 켜며 이들은 소년처럼 수줍게 웃었다.

 

“앞으로 계획은 다시 공부를 하는 거에요. 작년에 초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거든요. 야학 다니면서 공부를 시작해서 고등학교 검정고시까지 합격할 계획입니다.” (박현)

 

“소송을 다시 시작해야죠. 어차피 저번에는 이길 거라는 기대보다는 첫 소송의 의미 차원에서 해본 것이었어요. 하지만 정말 패소하고 나니 오기가 생기네요. 일단 우리는 자립을 했지만 주거복지사업은 민간단체에서 하는 거잖아요. 우리가 요구한 건 국가가 장애인 자립생활에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거예요. 지금 공익변호사그룹 공감하고 얘기 중입니다. 저번에 소송할 때는 시설 안에 있어서 좀 눈치가 보였는데 이제는 눈치 안 보고 본격적으로 준비해야죠.” (윤국진)

 

이들의 자립생활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이제야말로 시작이다. 앞으로 서울시에 추가 활동보조서비스도 신청해야 하고 수급권을 받기 위해 행정기관과 계속 싸워야 하며, 2년 뒤 이 집에서 나가면 어떻게 살지도 준비해야 한다. 공부도 해야 하고 소송도 계속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일단 나왔다. 첫걸음을 뗀 것이 중요하다고 두 사람은 말한다.

 

“저희는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는 장애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나와서 잘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먹고 살 건지, 밤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 너무 고민하지 마시고 조금이라도 기회가 된다면 나오시면 좋겠습니다. 자유가 있다는 것. 이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거라는 걸 시설에서 나오면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사는 것, 그것이 인간다운 삶이 아닐까요?”



박현진 기자 luddite420@beminor.com